‘사건의 나열 2’의 축소 버전
이 글은 원래 쓰던 상세 버전이 있는데, 누구도 별 관심 없을 내용이라서 제쳐두고 간단 버전으로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1. 프로젝트 중간에 업체가 CAT tool을 도입했다.
2. 업체가 캣툴 인풋 파일의 segment 나누는 방식을 바꾸고 소스와 타겟에 번역 내용을 뭘 넣을지를 예고 없이 변경했다.
3. 업체가 다시 한번 segment 형태를 바꾸고 어느 행(seg. no.)에 뭘 번역해서 넣을지를 바꾸었다.
4. 업체가 오류가 많고 휴가 간 직원들이 많아서라며 내부직원이 하던 네이티브 검수 후의 내용 비교 및 검토 작업과 최종 버전을 캣툴에 업로드하는 작업, 작업완료 보고서 제출을 번역자에게 시켰다.
새 캣툴 도입 전 온라인 교육과 테스트 파일 작성 제출을 주말주일에 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그 외에 이 모든 일이 예고나 번역작업자의 일정 확인이나 조율 없이, 일방적 통지로 이루어졌다.
사이사이에, 오후까지 완료해야 하는데 왜 캣툴에 아직 0%냐, 스펠 체크한 파일을 따로 제출하라는 등, 별별 일이 있었으나 생략. 요점은 이것이다.
내가... 너네 직원이냐? 너네가 내 사대보험 반띵 내어주고 있냐고.
미리 업무 내용과 건당 금액이 정해진 상태에서 일하는 중인 프리랜서 번역자가, 대체 어디까지 업체님을 위한 시간을 빼어놓고 대기를 타면서 이랬다 저랬다하는 실험에 굴려져야 하냐고. 얼마나 더 예정에 없던 시간적 비용을 일방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거냐고.
4.이후 마지막에 계속 적용하기로 했다는 그 규칙에 따르면, 네이티브가 검수한 파일을 받으면 번역자가 다시, MS워드와 그래머리로 스펠 검사를 하고, 소스와 타겟이 서로 안 맞는 점은 없는지도 다시 검사하고, 임포트해서 컨펌이 풀린 거 전부 다 다시 컨펌하고, QA도 돌리고, 내용 누락, 과제/수단 누락 등 확인하고 업로드하고, 그 모든 것을 다했는지 체크한 보고서도 업체에 보내야 한다.
이걸 이미 번역하면서 제 능력껏 했던 사람이 다시 또 해서 뭘 어쩌자는 거냐? 그것도 남이 한 파일로 다시 하라는데 이게 이미 했던 사람 눈에 보이겠나? 자기들은 기술적인 내용 보니까 어려웠는지 번역자가 하면 수월하고 쉬울 일이라고 한다. 아니, 문제는 그 일을 한 사람이 같은 눈으로 그걸 보면 문제 발견이 안 된다는 거라고. 그럴 바에야 시간을 한정없이 주면서 번역자=검수자로 일을 돌리지, 왜 검수자를 따로 둔단 말인가. (막말로 거지글로 머리 싸매고 욕을 하면서 막 번역 마치고서 지겨워 죽겠는데 이걸 다시 보라고 하면 토할 거 같다고.)
그리고 이렇게 업체 내부인력으로 하던 네이티브 검수 후 내용 누락 확인 검사까지 번역자한테 다시 파일 줘서 다 시키면, 그러면 업체는 자기가 돈 받는 값으로 하는 게 뭔가?
애초에 업체가 떼어가는 돈이 있으면, 번역 외 다른 일은 업체가 하기 때문에 돈을 떼어가는 것이다. 할당하고 납품하고 중간 조율하고 오랜 기간 정형화된 일만 하다가, 업체가 방식을 바꾸고 일을 벌였다. 그러면 거기서 부가적으로 발생하는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감수를 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이 내 기획대로 움직여주질 않아! 실수를 줄이랬더니 이제 다른 실수도 내네! 그러니 네가 하는 방법을 이렇게 해라 했다가 또 안 되면 저렇게 해라 했다가 그러고 있다. ‘나는 절대 너네들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서 발생하는 과 외의 일을 책임질 수 없어! 이 모든 비용은 너희가 책임져야 해! 안 되면 다시 다른 방법으로!’ 이딴 식이다... 계속 그런 식으로 변덕을 부리면서 해놓고 통보하고 무조건 따르라는 식인데, 진짜 엽.기.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기획을 ‘침대 기획’이라고 부른다. 세상 사람이 다 내 예상대로 움직일 거라는 공상 같은 기획, 혹은 일부 목소리 큰 사람의 요구만 따르면 되고 후처리는 또 다른 일부에 맞춰서 변경하고 그 외에는 나몰라라 하는 식 – 사이드 이펙트는 상관없어, 요구에 따라 도입했으니까! 도입의 정당성 외에 뭐 얼마나 대단한 고민을 했는지 의문이다.
컴퓨터 쓰는 작업은 사람이 실수를 하든,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문제이든 뭐든지 오류가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화면 끌리는 현상 때문에 엉뚱한 세그먼트에 번역한 걸 넣거나 ‘오류 더보기’ 메뉴가 내 화면상에 뜨지 않아서 QA를 한 번에 마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더더구나, 뭔가 방식을 바꾸고 새 툴을 도입을 하면 새로운 오류가 나고, 각자 다른 불평을 하고, 지랄난리가 나는 게 보통이다. 이걸 예상을 안 하고 기획을 하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와, 혼란이 일정 기간 지속되는 걸 느긋이 보고 대안을 마련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참지도 않고, 이랬다 저랬다...! 비용은 너네가 치르고 우리는 단물을 빨겠다는 이 태도에 질려버렸다.
옛날에 동기 어머니가 오빠에게 이론적으로 따지면서 싸우는 (내용 들어보면 이기는 게 합당한) 동기한테 그러셨단다. “사람이 그렇게 모든 일에서 손해를 안 보겠다는 식으로 살면 안 돼!”
나는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업체의 변덕에 맞춰주면서 시간적 비용적 손해를 충분히 감수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업체는 한 톨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이거 해봤다, 저거 해봤다, 사람을 뒤죽박죽으로 못 살게 구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번역에 집중을 못 하겠더라.
안 그래도 거지 같은 문장과 오류가 수시로 출몰하는 이 분야는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소모시킨다. 글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얼마나 진을 빼는지. 오류를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원초적인 문제가 있다. (중간에 AI실험하느라고 예상하고 오류율 올린 차수가 있지만. 아니, 업체 피드백도 없는데 최종갑이 어떻게 반응할지 직접 감점 각오하고 해보는 수밖에 없더라고.) 거기다 업체의 검수자라는 사람들(고딩 혹은 기계가 아닐까)이 보내는 태클까지... 업체의 검수자들이 기술적인 내용과 용어 검수에 얼마나 젬병인지 나중에 따로 풀어놓고 싶다.
자, 이게 특허 분야 글일 때 단어당 얼마를 받아야 합당할까?
그러니까, 이거 보고 궁금한 사람은 얼마였는지 직접 문의하시고, 미리 말하자면, 그래서 이 분야 번역은 하지 마라. 아니, 사람이 하는 번역은 곧 거의 다 죽을 거니까, 아예 직업으로 생각도 마시라.
댓글
댓글 쓰기